|홍광호의 경지... 불패의 ‘지금 이 순간’→머리칼마저 돕는 ‘컨프롱’

미치광이 집단이 만났다. 인간의 한계를 실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번째 시즌을 맞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는 장장 20년의 광기가 서려있다.

정신병을 앓은 아버지의 최후를 지켜본 헨리 지킬은 결심한다. 인격의 분리가 세계의 평화를 위한 길이라고 굳게 믿은 그는 치료제를 개발한다. 그러나 병원 이사회의 반대로 자신에게 약물을 주입하면서 에드워드 하이드가 탄생, 불완전한 임상실험은 결국 통제 불가능한 악의 지배로 이어진다. 결말까지 어렵지 않게 예측되는 플롯이다.
용맹한 대의는 참담한 허상에 지나지 않았다. 극은 지킬과 하이드, 이성과 감성, 선과 악, 희와 비, 부와 빈, 빛과 어둠, 삶과 죽음이 삭막하게 공존하기도 팽팽하게 대립하기도 하면서 인생을 적나라하게 조명한다.
특히 선악의 추상적 개념을 지킬과 하이드로 실체화해 보는 이들의 내면을 시험한다. 그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도리에 어긋난 됨됨이에 초조하기도, 누구나 가당한 이중성에 안도하기도, 쉬쉬한 욕망이 꿈틀대어 당황하기도 하니 말이다. 근질거리는 곳을 정확하게 긁힌 기분이 곧 이 극에 안달나는 이유겠다.


다이아몬드 형태의 무대는 비좁지만 빽빽하다. 생생한 LED 영상과 민첩한 2층 세트는 병원, 연회장, 클럽, 서재, 실험실, 교회 등 삽시에 다양한 공간으로 안내한다. 1800여 개의 메스실린더가 빼곡한 실험실이 눈앞에 당도하는 순간은 털이 쭈삣하고 일어선다. 그뿐이랴. 계산된 타이밍에 전환되는 신들린 조명, 악랄하게 타오르는 만반의 불쇼, 고막을 찌르는 지팡이 매질과 천둥번개 효과음까지 쾌락적 심상을 부추긴다.
‘홍지킬’과 ‘홍하이드’의 내면 묘사를 그리는 대표 넘버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 ‘얼라이브(Alive)’, ‘대결(The Confrontation)’은 고일한 1인 2역의 경지를 보여 준다. 그는 허락하지 않으면 사단 날 것 같은 발성, 머리칼마저 도와주는 흑화 장면, 뺏고 뺏기는 자아 충돌에 혹사되는 몸부림, 날 것의 짐승미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두 여인의 내공도 무시할 수 없다. 이들로 하여금 18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부조리를 꼬집는 동시에 ‘지킬’과 ‘하이드’의 양면성을 극적으로 분출시킨다. 클럽 무용수 ‘루시’의 쫀득한 유혹 ‘브링 온 더 맨(Bring On the Men)’과 처절한 체념의 ‘새 인생(A New Life)’은 10년 만에 돌아온 린아의 치밀한 자기 관리와 딴딴한 울림이 더해져 조화를 이룬다.
반면 지고지순한 약혼녀 ‘엠마’의 그리움에 사무치는 ‘한 때는 꿈에(Once Upon A Dream)’, 혼성 사중창 ‘기도하네(His Work and Nothing More)’에서의 치열한 하이노트는 데뷔작을 초월한 이지혜의 성숙한 매력이 십분 발휘된다. 또 둘이 주고받는 ‘그의 눈에서(In His Eyes)’의 애절한 하모니는 이토록 흠씬 사랑받는 지킬이 남부럽기까지 하다.
한편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오는 5월 18일까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공연된다. 인터미션 20분 포함 러닝타임 170분. 14세 이상 관람가.